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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터뷰] 카카오에서 초기 스타트업으로 이직 후 갭이어를 가졌어요. 크고 작은 번아웃 극복 방법도 공개할게요 – 프로젝트 운영 매니저 민소영님

About Interviewee

오늘의 그룹바이 인터뷰, 그터뷰의 주인공은 프로젝트 운영 매니저에서 ​Product Manager으로 직무를 전환하신 민소영 PM 님입니다.

이렇게 선뜻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짝반짝 보석 같은 내용들이 많고 알차서 특별히 1탄, 2탄으로 나누어 인터뷰가 업로드될 예정이에요 🙂

조경 업계에서 카카오로, 카카오에서 다시 AI 데이터를 다루는 스타트업으로, 크고 작은 번아웃 극복 방법까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그룹바이를 활용하여 이직 준비를 하고 계신 소영님과의 인터뷰로 후배들을 위한 생생한 조언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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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현재 하고 계신 일과 이전에는 어떤 곳들을 거쳐오셨고, 어떤 일들을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어떤 분야에서 일해왔는지 먼저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우선 조경 설계 분야에서 4년, IT 분야에서 5년 반, 이렇게 10년 조금 못 미치는 경력을 가지고 있어요.

설계 분야 경력부터 간략하게 설명드리면 학부 때 주전공은 관광경영, 조경학은 부전공이었는데요. 학부 때 지도 교수님 영향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경관 보전 및 개발 연구실에서 공부를 했어요.

석사 졸업 이후에는 대부분 연구소에 취업하는 동기들과 달리, 저는 설계 회사에 너무 가고 싶어서 조경 설계 회사에 취업을 했습니다. 설계 일을 ‘업’으로 여기며 밤낮없이 재밌게 일하다가 몸을 돌보지 않았던 탓에 허리를 다쳤어요.

당시 건축도, 조경도 ‘설계’ 회사는 대부분 근로 환경이 열악했거든요. 저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죠. 야근은 기본이고, 빨리 퇴근해도 밤 10시~12시에, 주말 출근도 잦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출근은 아침 9시인 회사를 1년 365일, 4년간 다니다 보니, 몸이 고장 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였죠. 허리 디스크 직전까지 진행된 상황이라서, 그때 커리어 전환을 고민했습니다.

허리 복대를 차고 방에 누워서 온갖 고민을 하다가, ‘난 설계 일을 정말 좋아하지만,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한다면 몸이 축나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지 아니면, 건강을 위해 다른 분야로 방향을 틀지, 갈림길에 선 거죠. 그때 저는 후자를 선택했어요, 아무리 일이 좋아도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 어찌 보면 도망치는 길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웃음)

진로를 틀기로 결정한 후 무엇을 하며 먹고살지 고민하면서, 자연스레 ‘지금 내가 가진 기술이 뭘까?’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한 것 같아요.

그때는 짧은 생각에, 나는 설계를 해서 CAD랑 포토샵도 할 줄 알고 컴퓨터로 하는 일들을 잘하니까, IT 분야로 넘어가면 되겠다고 쉽게 생각했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니까요(웃음).

그렇게 허리가 나아져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된 이후 국비 지원으로 웹 퍼블리싱 교육을 받은 게 시작이었어요. 하지만 6개월 정도 관련 교육을 듣고, 웹 퍼블리셔로 취업하려고 수십 군데 지원했었는데 그게 잘 안됐지요.(웃음)

그러다 우연히 카카오 저품질 발굴 TF 팀에서 계약직을 채용하는 공고를 발견하곤 지원했는데, 운 좋게 잘 봐주셔서 거기서부터 IT 분야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카카오에서는 2년 동안 일을 했어요.

처음 1년은 검색 품질 관련 업무를 했고, 이후 1년은 Daum 백과 DB를 구축하는 디지털라이징 업무를 했어요. 그리고 입사 이후 총 2번, 팀을 이동했는데 여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답니다(웃음).

이제 막 IT 분야로 넘어와서 업계 상황을 모르던 저는, 처음 입사한 TF에서 계속 일할 줄 알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순진했죠.(웃음)

하지만 그 팀이 입사 3개월 만에 갑자기 폭파되며, ‘겨우 IT로 넘어왔는데, 고작 3개월 만에 잘리는 건가?’라는 생각에 패닉이 왔었는데 다행히 검색품질평가셀(일명, 품평셀)로 옮겨주셨어요, ‘타의’에 의한 첫 번째 팀 이동이었죠.

두 번째 팀 이동은 ‘자의’에 의한 이동이었습니다.

품평셀에서 9개월 정도 일하다가, 한번은 큰 회의에 참석했는데 지식셀에서 보충 인력을 모집했습니다. 당시 계약 종료 전까지 IT 분야의 업무를 가능한 다양하게 경험하고팠던 저는, 이를 절호의 기회라 생각해서 ‘즉시’ 그 자리에서 자원했습니다. 아~주 나중에야 그 즉각적인 행동이 담당 셀장에게 얼마나 무례한 일이었는지 깨달았지만요(웃음).

지식셀에서는 Daum 백과 D.B(Data Base)를 구축했는데요, 실물 도서를 디지털화하여 포털 Daum 및 백과에서 콘텐츠로 볼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제가 투입될 당시, 계약은 체결되었지만 디지털화가 지연된 단행본이 많아서 이를 빨리 D.B로 만드는 게 급선무였죠.

__우와 너무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그 많은 걸 다 하시려면요… 어떻게 헤쳐나가신 걸까요?

정리를 좋아하는 성향 덕분인지,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재밌고 뿌듯했어요.

그리고 배운 건 다 써먹을 곳이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웃음). 앞서 6개월 정도 웹 퍼블리싱을 배웠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때 좀 더 스킬업하고 싶어서 사비로 웹디자인과 UX 관련 수업도 함께 들었거든요.

그때 배운 웹디자인과 UX 관련 지식이 Daum 백과 D.B 구축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답니다.

이를테면, 외부 업체가 단행본 목차에 따라 1차로 D.B를 구축해오면 저는 Daum 백과의 PC/모바일 버전을 고려하여 UI/UX 관련 피드백을 하거나, 나아가 Daum 검색에서 백과 노출이 잘될 수 있도록 표제어 선정에 대해 코멘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코멘트가 반영된 D.B를 최종 검수하여 Daum 백과 서비스에 배포하고요.

이런 식으로 업무를 하나하나 단계별로 다져나가니 퇴사할 때 즈음 인수인계를 위해, 피드백한 내용을 쭉 정리한 문서는 어느새 Daum 백과 D.B를 구축하는 기본 가이드라인이 되더라고요.(웃음)

이 일을 끝으로 카카오를 퇴사했죠. 아마도 이후 회사에서 가이드라인 잡는 일을 하게 된 것도 카카오에서 했던 백과 D.B 구축 업무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__진짜 다 연결이 되어 있네요.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는 것 같아요 🙂 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the dots 명언이 떠오르네요. 모든 점은 연결된다는!

카카오를 퇴사할 때 즈음 첫 번째, 커다란 번아웃을 겪었어요.

어느 날 일이 너무 숨 막히는 느낌이 들더니,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심신이 너무 지친 나머지 곧바로 이직하지 않고, 고민 끝에 ‘개인적인 인생 프로젝트’를 결심했죠.

한 가지 실험해 보고 싶었거든요.

‘과연 내가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이직에 실패한 저를 자책한 나머지, 적어도 인생에서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작정 제주도로 내려갔습니다. 이전에 종종 제주 여행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참 편안했거든요. 보름 살기를 하다가, 일 년 정도 더 살아보고픈 마음에 ‘성급히’ 제주에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초기 스타트업에 들어갔는데, 그게 패착이었던 것 같아요. 제 몸과 마음이 회복되지 않았는데, 돈 때문에 성급히 회사를 들어가서 그런지 결과가 좋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재빠르게 이직했지만 역시 결과는 같았으니까요.

이렇게 두 회사를 거치면서 ‘몸과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성급히 회사에 들어가지 말자.’ 라는 교훈을 얻었어요.

그리고 약 1년 반 정도의 제주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심신을 정비한 후 일을 구하던 와중에 딥네츄럴을 만나게 됐죠!

사실, 딥네츄럴 PM 채용 공고를 먼저 발견했어요.

딥네츄럴이 작성한 회사 소개 글과 이런저런 자료를 읽다 보니, 저와 비슷한 아우라를 풍겨서 더욱 관심이 생겼죠.

하지만 AI 학습 데이터 구축이 당시에 엄청 생소했고, 저는 PM 경험도 없어서 선뜻 지원하지 못했습니다. 때마침 아르바이트를 구하더라고요. 그래서 정성스레 이력서를 작성해서 지원했죠.

아르바이트로 한 달, 두 달 일을 하다 보니 당시 딥네츄럴은 초기 스타트업에서 이제 막 스케일업하려는 시점이라, 일손 부족으로 허덕이는 게 보였어요. 그게 너무 안쓰러웠고, 마침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어서 하나둘씩 아르바이트 -‘업무 이외의 것’을 돕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AI 학습 데이터를 구축하며, 동시에 가이드라인 정리 업무를 함께 했어요.

카카오 업무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D.B 구축에는 가이드라인 관리가 매우 중요한데 그게 잘 안되고 있더라고요. 물론 클라이언트 쪽 PM이 가이드라인과 관련된 Q&A를 진행했지만, 외부인이라 커뮤니케이션에 한계가 있었고요. 그 역시 과중한 업무로 인해 구두 대응 혹은 부분적인 Q&A가 쌓이며, 전체적인 가이드라인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중간에서 누군가 가이드라인을 도맡아 관리하면 모두가 편해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정리하기 시작했죠. 물론 제가 편하게 일하려고, 시작한 것도 있지만요(웃음).

가이드라인 관리 업무는 내/외부로 반응이 좋았어요.

클라이언트 쪽 PM의 신뢰도 얻고, 함께 일하던 아르바이트생 사이에서도 D.B 구축을 자연스레 리드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양한 업무를 돕다 보니, ‘엇? 내가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라고 깨달으며 자신감도 얻었답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가 끝날 때 즈음, 딥네츄럴에서 먼저 영입 제안을 해주셨어요. 이후 딥네츄럴에 정규직으로 입사해서, 2년 반 동안 AI 학습 데이터를 구축하는 프로젝트 운영 매니저로 일했습니다.

__카카오도 딥네츄럴도 결국엔 그거 같아요. ‘뭔가 각 잡고 취업해야지’ 하면 사실 좋은 자리는 많이 없잖아요. 그런데 소영님처럼 편견을 깨고 일단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로라도 들어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다 보니까 ‘내가 이걸 잘하네’라고 알게 되고, 이렇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신 것 같아서 너무 멋있어요!!

맞아요! 주아님, 엄청 예리하시네요. 저도 주아님처럼 그냥 열심히, 재미있게 일했을 뿐이에요(웃음).

그러다가 불편한 점이나 문제점을 발견하면, 게다가 그걸 제가 해결할 수 있다면, 먼저 스스로 움직였을 뿐이죠. 이로 인해, 저도 딥네츄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답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 중에서 가장 공감되는 부분도 그거예요.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둘 늘려가면서, 제 자리를 만들어 간 거요.

일례로, 제가 빌딩했던 프로젝트 운영팀의 R&R(Roll&Responsibility) 히스토리가 좋을 것 같은데요. 딥네츄럴에 정규직으로 입사하자마자 대표님께서 제게 요청한 것은 가이드라인과 함께 학습 데이터 구축을 위한 단기 인력 관리 팀(e.g. 아르바이트)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팀명도 A.I(Artificial Intelligence)에 상응하는 H.I(Human Intelligence)를 차용해서 H.I Crew로 정했죠.

하지만 회사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당시 정규 멤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저희 팀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둘씩 늘려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R&R이 초반에 비해 크게 확장되고, 그 비중도 단기 인력 관리에서 프로젝트 매니징으로 이동했습니다.

확장된 R&R은 크게 세 줄기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AI 학습 데이터 구축을 위한…

  1. 프로젝트 계획/관리 및 납품 데이터 품질 검수 (가이드라인 설계, 작업도구 개발 등)
  2. 플랫폼 운영 (운영 정책 수립, 기능 제안, 개발 이슈 리포트 등)
  3. 단기 인력 모집, 교육, 관리

물론, 각각은 매우 큰 덩어리라서 당시에는 매우 힘들었고, 이후 팀의 전문성을 키워야 할 시점에 돌입하면서 여러 가지 고민이 발생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학습 데이터 구축의 전 과정에 Deep dive해서 일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딥네츄럴 AI 학습 데이터 페이지

또한 ‘내가 남들보다 이건 잘하고, 이건 조금 약하구나.’라는 걸 깨닫는 계기도 되었고요.

이를테면, H.I Crew 팀의 정규 멤버는 2인 1조가 되어, 총 4개 그룹이 프로젝트를 관리했어요. 각 그룹이 수행하는 업무는 동일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각자의 주특기가 차별화되는 흥미진진한 경험을 했죠. 그때 깨달았어요.

‘아하~ 나는 다른 사람보다, 동시에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능력은 약하구나.’

‘하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 가이드라인 설계에 신경 쓰고, 데이터 품질 관리를 잘하는 편이구나.’

‘그리고 개발자, 디자이너와 커뮤니케이션이 수월해서 프로젝트 매니징 업무를 폭넓게 수행하는 편이구나.’

그래서 이후 4개 그룹 사이에서 제 장점을 중심으로 포지셔닝하며 일했고, 매니징에 강점이 있었기 때문에 H.I Crew 팀을 제로베이스에서 빌딩하고, 리드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딥네츄럴에서 2년 반 동안 신나게 달렸어요.

그리고 갭이어를 거쳐, 현재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중입니다.

최근에는 ‘다음 스텝으로 어떤 일을 하면, 재미있을까 혹은 보람찰까?’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해요.

요즘 같은 불경기에 취업만 돼도 감지덕지라지만, 저를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재미와 보람‘이거든요. 그리고 딥네츄럴의 데이터 구축 업무는 외주 형태라, 납품 피드백이 없어서 늘 아쉬웠는데요.

이때마다, 프로덕트 하나를 진득하게 운영하여 키워보고 싶다는 갈증이 점점 커졌습니다. 그래서 다음 회사는 자사 서비스 혹은 플랫폼을 보유한 곳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경험을 쌓고 싶어요!

__오 소영님께서 하나의 프로덕트를 잘 개선하고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걸 정말 잘하실 것 같아요! 프로덕트 매니저로 직무 전환을 응원합니다 🙂

Q2. 프로젝트 운영 매니저로 맡으셨던 업무에 대해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일을 하며 가장 큰 고충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프로젝트 운영 매니저로 일하면서 크게 세 종류의 업무를 했는데요.

돌이켜보면, 모두 하나같이 드라마틱한 일들이 많았네요. 개인적으로 이 중 가장 힘들었던 건, 데이터 구축 인력의 ‘잦은’ 교체였습니다.

저는 내향인이거든요(웃음).

공들여 리쿠르팅하고, 교육하고, 손발이 맞을만하면 인력이 교체되는… 이런 과정이 짧게는 1개월, 길어봤자 6개월 남짓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남들보다 에너지 소모가 크더라고요.

기억이 미화되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외의 것들은 어려울지언정 재미있기도 했어요. 운명인 건지, 복합적 요인이 얽힌 난해한 프로젝트를 꽤 많이 수행했더라고요(웃음).

모두가 기한 내 끝내지 못할 거라 걱정할 때, 예상을 뒤집고 기한 내 해결한 파견 프로젝트도 있었고, 클라이언트가 도무지 갈피를 못 잡는 통에, 우스갯소리로 영영 완료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프로젝트도 뒤늦게 투입되어 완수한 적도 있었죠.

__저도 그거는 정말 공감해요. 그래서 사람이 자주 바뀌는 그런 일을 못하겠더라고요. 소영님께서 이제 좋은 팀에 가서 팀원분들이랑 진득하게 일을 할 수 있으면 더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습니다 🙂

한번은 이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있어요.

단지 인력 교체 ‘빈도’가 잦아서 힘든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좀 더 근원적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본 거죠. 저는 각자의 업무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일하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이에요.

이를테면, 일의 배경과 목적, 우리의 목표 혹은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충분히 설명하고, 각 담당자와 문제점 등 각종 사안을 충분히 논의한 후 각자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책임지고, 결과물을 도출하는 방식으로요.

하지만, 아르바이트분들은 급여나, 계약 기간, 정보의 양 등으로 인해 업무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지요. 이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또한 개중에는 아르바이트임에도 높은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히 일하는 분도 있지만, 반대로 불성실한 분들도 많아서 프로젝트 운영 매니저로서, 아르바이트분들이 일을 제대로, 잘 하는지 확인하는 역할은 필연적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 점이 힘들었던 거죠. 함께 일하는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기는 스타일인데, 가령 ‘이때는 왜 작업량이 적은가요? 이때는 왜 일을 안 하셨어요?’라고 일일이 확인하고, 채근해야 했으니까요.

__그런데 어떻게 2년 반을 프로젝트 운영 매니저로 업무하실 수 있었나요?

무엇보다 정규 멤버로 함께 일했던 동료들 덕분이죠.

앞서, 일을 할 때 저를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재미와 보람’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딥네츄럴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은, 제가 한 일들이 참 뿌듯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입사 초기, 저희 팀이 이미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리소스가 없는데, 신규 프로젝트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그 당시 유일한 PM과 저는 전화로 투닥거리며 싸웠고, 전 너무 화가 나서 그날 오후 업무를 진행할 수 없었죠. 하지만 곧바로 다음날 화해했어요.

서로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며, 다 큰 어른들이 눈물-콧물 찔끔거리고 사과하던 장면이 지금 상상해도 웃음이 나네요(웃음). 그 이후로 저는 그분과 더욱 신뢰가 두터워졌죠.

어쩌면, 동료들과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잘 봉합했다는… 면접에서 흔한, 단골 소재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저는 처음이었거든요, 이렇게 갈등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사과하고 더욱 신뢰를 쌓은 일이 말이죠. 그래서 화해할 때 먼저 운을 떼주신, 그 PM분께 지금도 감사하답니다.

이렇게 일에 대한 ‘재미’와 동료들이 북돋워 준 ‘보람’ 덕분에 딥네츄럴에서 프로젝트 운영 매니저로서, 무아지경에 빠져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사 후 2년 반 즈음, 안타깝게도 두 번째 커다란 번아웃이 찾아와 퇴사를 선택했어요.

그때도 역시, 일에 무아지경으로 빠져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탓이 컸죠. 담낭 결석으로 배가 아파도, 프로젝트 납품 후에 병원에 갈 정도였으니까요. 아마 그때 번아웃이 오지 않았더라면, 제 행보는 지금과 사뭇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 찾아온 ‘대형’ 번아웃이었던 만큼, 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도 사뭇 달랐는데요. 마치, 지금까지 겪었던 크고 작은 번아웃에서 습득한 교훈의 종합본이랄까요?(웃음)

__오 너무 궁금해요! 번아웃으로 인해 배운 교훈이요 🙂

조경 설계와 IT 분야를 통틀어, 저는 10년 조금 못 미치는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 사이사이 크고 작은 번아웃을 경험했어요.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작은 번아웃이 반복되어 업무 공백기를 가질 때면, 제일 먼저 ‘아… 항상 난 왜 이럴까?’라고 자책하며, 그 원인을 제 안에서’만’ 찾곤 했는데요.

비록 회사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시간을 1개월, 3개월 지속하며 몸도 마음도 편히 쉬지 못했죠. 심지어 제가 ‘번아웃’ 상태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말이죠.

번아웃을 인지하고, 극복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시작한- 심리 상담이었어요. 카카오에 다닐 적에, 사내에 무료 심리 상담 서비스가 있었거든요.

이때 처음 생각도 습관이 있다는 걸 배우고, 제가 번아웃에 빠질 때마다 무한 루프처럼 도는 부정적인 생각의 굴레가 있어서 우울한 감정에 허덕인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여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제가 부정적인 생각의 굴레에 빠진 상태를 인지하고,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는 방법을 찾게 도와주셨습니다.

당시 선생님과 함께 찾은 맞춤형 해결책은 세 가지 정도예요.

명상하며 현재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연습을 하고, 몸을 자주 움직여서 우울한 감정이 들지 않게 하고, 피아노를 치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렸죠. 신기하게도 저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행위가 샌드백을 치는 것과 같이 느껴져서 속이 후련하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이것들은 효과가 꽤 좋았답니다.

이후로는 번아웃이 찾아와도 우울한 감정에 낭비하는 시간도 줄고, 무엇보다 번아웃의 원인을 자신의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살펴볼 수 있었으니까요.

이를테면, ‘아… 난 왜 이렇게 나약할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마도 나는 남들보다 몇 배 더 열정적으로 일해서, 몸과 마음이 빨리-자주 소진(Burn out)되는 사람이구나’라고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사실, 딥네츄럴을 퇴사하게 만든 번아웃은 그동안 겪었던 것들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숨 막혀서 일하기 ‘싫은’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할 수 없는’ 수준이었거든요. 문서든 책이든 문자 자체가 읽히지 않았고, 제가 어느새 회사 동료들에게 고슴도치처럼 행동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크고 작은 번아웃 경험 덕분이었을까요?(웃음)

이번 상태는 심상치 않음을 빠르게 직감할 수 있었고, 또한 꽤 오래 지속될 것 같아서

이런 몸과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건, 회사도 저도 마이너스라는 판단을 내리고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퇴사 이후에는 -그동안 교훈을 바탕으로- ‘몸과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성급히 회사에 들어가지 말자.’라는 기조를 세워

‘충분히’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운동을 시작했지요. 유일하게 좋아해서 꾸준하게 할 수 있는 필라테스로요.

이걸 1년 동안 꾸준히 하고, 집안일도 루틴으로 만들어 ‘일부러’ 몸을 많이 움직였습니다.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게 말이죠.

다음으로, 머리를 비워내려고 한동안 디지털 기기를 멀리했어요. 소위 ‘멍 때리기’를 의도적으로 시전한 거죠(웃음).

그리고 많이 비워낸 이후에는 일과 ‘전혀’ 상관없는 것만 조금씩 접했습니다.

가령 -평소에는 눈길도 안 주던- 철학, 인문학, 미디어 관련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라디오처럼 듣곤 했죠.
이것도 듣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웃음)

마지막으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회복하는 시간 동안 제가 했던 생각이나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그때그때, 두서없이 메모했죠. 이렇게 하루 이틀 모아보니 꽤 많은 양이 쌓여서, 처음엔 제 생각조차 쓰기 힘들었지만, 점차 나아지는 것이 눈에 보였어요.

앞선 세 가지를 꾸준히 실천하다 보니, 한 가지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요. 그건 바로, 제가 불안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업무 공백기가 일주일, 한 달만 지나도 ‘이러다 영영 취업 못하고, 낙오자가 되는 게 아닐까?’라고 불안감에 허덕였는데 말이죠. 결국 이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 나이를 먹고서야, 번아웃에서 회복하는 저만의 방법을 찾았습니다(웃음).

__너무 좋은 번아웃 극복 방법과 퇴사 이직 불안 극복 방법인데요!! 정말 멋져요 🙂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아직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걸요!


1탄부터 벌써 인사이트가 몇 개인지…!
소영님의 이야기가 인터뷰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2탄으로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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